본문 바로가기

조선, 부산, 역사, 지리, 역사적 사건

조선시대 부산의 역, 파발제도, 봉수시설

조선시대 부산의 역, 파발 제도, 봉수 시설

조선시대 부산의 역, 파발제도, 봉수시설
조선시대 부산의 역, 파발제도, 봉수시설

부산의 역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역은 조선시대 가장 중요한 교통, 통신시설이었습니다. 역은 전국의 중요 도로에 30리마다 두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역에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말과 장정(壯丁)을 두어 공무를 위해 이동하는 관리에게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역전이 지급되어 있고 이걸 총 관리하는 사람을 역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 의하면 부산에는 휴산역과 소산 역의 명칭을 확인 할 수 있는데 휴산역은 현재의 지하철 동래역의 남쪽, 소산역은 현재의 금정구 선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역 외에도 공무 수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원도 있었습니다. 원은 일종의 국립여관으로 부산에는 온천동의 온정원, 청룡동의 언수원, 좌천동의 사천원이 있었으나 18세기에 들어서면 모두 폐지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원은 국가 관리가 유숙하는 곳이고 일반인들이 관리하는 곳은 점이라고 하고 옛날에 보면 주막 점 같은 곳을 일반인들이 유숙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의 사진은 조선의 구대로, 아홉 개의 대로인데 조선은 30리마다 역을 세우고 십여 개의 역을 잇는 길을 하나의 도라고 불렀는데 부산, 즉 동래와 연결된 길을 영남대로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남대로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동래부였으며 휴산역, 소산역, 양산을 거쳐 밀양의 무흘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황산도라 불렀습니다. 광여도에 나타난 휴산역과 소산역의 모습입니다. 지도 가운데 동래읍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금 아래에 휴산역이 표시되어 있고 길을 따라 북상하면은 동래와 양산의 경계의 지역에 소산 역이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파발 제도의 실시와 부산의 참

다음에는 파발제도의 실시와 부산의 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역이 교통과 통신, 수송 등의 임무를 종합해서 맡아보는 곳이라면 참은 오로지 통신의 기능만을 수행하던 시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신의 임무를 위해 파발을 두었으며 말을 사용하는 기발과 걸어서 전달하는 보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파발 망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발, 양주에서 경원에 이르는 북발, 광주에서 동래의 초량 참에 이르는 남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동래부지》에 따르면 동래부 관내에는 소산 참, 관문 참, 부산 참, 초량 참이 있었으며 모두 남발에 속했습니다. 이 말을 한 마리는 단 마패라고 하고 두 마리는 이두 마패, 세 마리는 삼두 마패라고 하는데 이 그림은 삼두 마패네요. 역이나 참에서는 이와 같은 마패로 말을 빌려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흔히 궁지에 몰린 암행어사가 내미는 비장의 카드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실은 역참에서 말을 빌릴 수 있는 증서이며 그것이 곧 국가의 관리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 된 것입니다. 말의 그림에 따라서 말 수를 빌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부산의 봉수 시설

부산의 봉수 시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봉수는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서울 또는 이웃의 군영으로 빠르게 알려주기 위해 설치한 군사시설입니다. 보통 20~30리의 거리를 두고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설치하였습니다. 밤에는 불을 밝혀 신호를 보내고 낮에는 연기를 내어 이웃의 봉수대에 연락을 했는데 평상시에는 하나의 불을 밝히는 1 거 적이 나타나면 2 거, 적이 접근하면 3 거, 적이 경계를 완전히 침범하면 4 거, 전투가 벌어지면 5 거의 신호를 이웃의 봉수대로 보내어 상황을 전달합니다. 사실 낮에는 횃불을 밝히면 알려지지가 않기 때문에 낮에는 주로 연기를 나게 하는데 이 연기는 바람이 불면 흩어져 버립니다. 그래서 낮에 내는 연기는 주로 산에서는 짐승의 오물을 수거했다가 오물을 태우면 오물의 연기는 위로 쭉 올라갑니다. 위로 올라와 산 쪽에서 흩어지기 때문에 주로 낮에는 짐승의 오물을 수거했다가 태우고 오물이 없을 때는 산에 있는 청솔가지를 가져다가 불을 지피게 하고 있습니다. 《동래부지》에 따르면 부산에는 황령산(양정동 뒷산), 오해 야항 (용당동 뒷산), 석성산(천마산), 구봉(초량 뒷산), 응봉(다대포 두송산), 계명산(금정산 북봉), 간비오산(장산 남봉)에 각각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전하는데 원래 이 봉수대는 서울에 연결되어 있어, 서울에는 본부가 있습니다. 이게 옛날에 목멱산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남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