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산, 역사, 지리, 역사적 사건

부산에 설치된 부곡과 향

도르레차 2022. 7. 26. 19:38

부산에 설치된 부곡과 향

부산에 설치된 부곡과 향
부산에 설치된 부곡과 향

현의 하부조직인 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군, 현의 하부조직은 촌이었습니다. 혈연관계로 만들어진 자연촌이 모여 지역촌을 이루었고 지역촌은 군과 현을 지탱하는 지지기반이 되었습니다. 일반 양민들의 거주지, 자연촌과 지역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자연촌과 지역촌

고려시대 동래현과 동평현에는 자연촌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촌은 일반 양민들의 거주지였지만 현재 고려시대 촌락에 대한 상세한 사료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지금 사실 촌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에 있는 게 아니고 일본 나라에 정창원 문서에서 일본의 동대사의 창고인 정창원에서 자료가 발견이 됐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의 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자연촌이 있고 또 행정촌이 있고 이런 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촌을 다스리는 사람을 차촌주라고 하고 행정촌을 다스리는 촌주를 진촌 주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행정촌을 지역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여 사는 자연촌이 있었으며 이러한 자연촌이 모여 하나의 지역촌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촌을 통솔하고 촌의 업무를 관장하는 자를 대감 혹은 제감으로 불렀는데 성종 6년에 이러한 명칭을 촌장과 촌정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들은 수령과 촌민의 중간에서 조세의 징수와 군역과 역역을 담당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일반 양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촌 이외에 특수한 행정구역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바로 향과 부곡입니다. 향과 부곡은 신라시대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며 향과 부곡은 다른 명칭으로 불렸지만 모두 천민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천민 집단이 거주하는 곳이 아닌 양인들이 거주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구분되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 중기 이후부터라고 생각이 듭니다.

특수행정 구역 향과 부곡

특수행정 구역 향과 부곡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시대 부산에 위치했던 향과 부곡에 대한 기록은 간접적으로 전해지는데, 고려 초기 부산에는 하나의 향과 4개의 부곡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각 생천향과 고지도, 조정, 형변, 부산 부곡이 바로 그것입니다. 생천향은 현재의 남구 대연동에 위치했고 고지도 부곡은 부산진 매축공사 때 사라진 고지도라는 섬에 위치했고 조정 부곡은 현재의 금정구 두구동, 형변 부곡은 현재 신선대가 있는 남구 용당동으로 추정이 됩니다. 우선 조정 부곡이 있던 두구동과 형변 부곡이 있던 용당동의 풍경입니다. 사진처럼 과거 부곡이 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고지도 부곡은 일제강점기에 행해진 부산진 매축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려 전기의 부곡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구속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업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일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을 하기도 하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후삼국시대의 부산지역은 견훤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동래는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고 동래현의 영역 안에는 네 개의 부곡과 한 개의 향과 세 개의 염을 만드는 염소가 설치되었습니다.